오후 1시쯤 홍콩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고 수속을 밟아 밖으로 나왔다.
날이 후덥지근 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제 가을이 되어 선선한 한국에서 다시 홍콩으로와 여름을 겪자니 살짝 후회가 되기도 한다.
다른 곳에 갈 걸 그랬나, 왜 하필 홍콩이었지?
공항에서 시내의 호텔로 가는 방법은 전철과 공항 버스가 있다. 시간은 전철이 더 적게 걸리지만 시내 구경을 하고 싶어 버스를 타기로 했다.
도착한 2층 버스에 탑승해 1층 캐리어를 두는 곳에 캐리어를 올려두고 2층으로 올라갔다.
중국인들과 한국 사람이 몇몇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나도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둘러본다.
내심 1층에 아무런 잠금 장치없이 두고온 캐리어가 걱정이 된다. 그런데 앞을 보니 주기적으로 캐리어쪽을 비추어주는 CCTV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혹시 모르니 한번씩 확인해야겠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가져가고 있다면 2층에서 내려가 제지하면 늦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다가, 여기까지 와서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나하는 마음이 들어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몇 정거장가서 중국인 여러명이 우르르 2층으로 올라와 자리를 잡는다. 옆에 어떤 중년 여성이 앉았는데 얼마 후 나에게 무어라 질문을 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어 (중국말인지 한국말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I am Korean." 이라고 하자, 또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였고 몇 번의 시도 끝에 그 여성은 결국 포기하였다. 옆에 앉아서 나중에 일행과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조선족 사람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들으니 대충 알아들만했다.
어쨌든 호텔에 도착해서 프론트가서도 말을 한번에 알아듣기 힘들었다. passport? 라고 한 것이었는데 억양이 미국식 영어와 달라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중국어 성조와 영국식 영어 발음이 섞여있는듯이 들렸다.
호텔에서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영화 중경삼림에 나왔던 충킹멘션과 레이디스 마켓에 들렀다. 충킹멘션 1층에는 식당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편한 마음으로 돌아다니기는 어려웠다. 저녁은 레이디스 마켓 근처 식당에서 해결한 후 호텔로 돌아와 첫날을 마무리하였다.
두번째 날 아침이 밝았다. 첫날 경험해보니 호텔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건물들에 에어콘이 상당히 잘 나오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거리를 걷다가 옆의 건물의 문이 열리기만 해도 시원한 바람이 선풍기 바람처럼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쾌적하게 잠을 잘 수 있었고 아침은 호텔 지하의 조식 뷔페를 먹었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식사 후 홍콩공원,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헐리우드 거리를 둘러본 후 딤섬을 먹으러갔다.
내부는 북적였고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자리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홍콩은 인구밀도가 높아 합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나는 6인용 테이블 가운데 앉게되었는데 4명이 이미 가장자리에 두 명씩 마주보며 앉아있었다.
돼지고기 들은 것 4개 새우들은 것 4개 총 8개의 딤섬과 우롱차를 시켰다. 우롱차는 한잔이 나오는게 아니라 한 주전자가 나와서 절반은 남겼다.
왼쪽 자리에 앉은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앉아있었는데 여자가 식사를 다한듯 하자 아무런 말도 없이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알고보니 일행이 아니라 그냥 합석했던 사이였나보다. 어쩐지 대화도 없고 남자가 한창 식사 중일 때 여자 음식이 서빙되었다.
늦은 점심 식사 후에는 관우를 모시고 있다는 만모 사원에 들렀다. 한명 당 3개의 향을 쓸 수 있었는데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사원 내 향 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복잡하고 후끈한 거리와는 다르게 차분한 사원 내에서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고 입구 옆에 있는 기념품 매장에서 나무로된 팔찌를 하나 구매했다. 현금만 받고 거스름돈도 주지 않는 곳이었는데 금액을 맞춰낼 수 없어서 보시하는 기분으로 넉넉히 지불하였다.
그리고 저녁에는 빅토리아 피크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피크에 다녀왔다. 명소라서 역시 사람이 많았다. 홍콩 경찰도 동원되어 안내를 하고 있었다. 한시간 정도 기다려 탑승할 수 있었다. 이 쯤되니 휴대폰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아서 사진은 몇 장찍지 못했다. 중간 중간 휴대폰 충전할 수 있는 곳이 있을 줄 알았는데 한국처럼 카페 같은 곳에 콘센트가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빅토리아 피크 타워의 마담 투소 박물관에서 겨우 몇 분 충전할 수 있었다. 지도 앱을 사용하지 못하면 미아가 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였다.
저녁 식사는 빅토리아 피크 타워 내 식당에서 먹었는데 홍콩의 많은 식당들이 QR 코드로 주문할 수 있는 URL을 주고 웹 사이트에서 주문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고 여기도 그랬다. 그런데 주문 요청 시 계속 503 에러 응답이 나오고 첫 페이지에 다시 접속했더니 마감되었다고 나와 메뉴판을 들고가 힘겹게 주문할 수 있었다.
식사 후 호텔로 돌아오는 길이 참 힘겨웠는데, 내려오는 트램도 오래 기다려해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버스의 줄도 꽤나 길었다.
지도 앱에서는 15분 간격 배차라는데 30분에 1대도 오지 않았고 버스도 큰 버스도 아닌 미니 버스라 사람들이 얼마 타지도 못했다.
택시 줄도 무척이나 길어 타려면 한 세월 걸릴듯 했다. 줄 뒷 사람들이 오고 있는 택시를 새치기해서 타려고 하는 경우가 몇 번있었는데 안내 요원들이 제지하여 다시 내리게 하고 있었다.
내 앞에 있던 중국인 일행도 답답해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버스가 언제 오는지 한 남자가 물었다. 나도 모르겠다고 하였고 잠깐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들은 뉴욕에서 온 중국계 미국인 가족이라고 했다. 이야기 살펴보니 그렇게 보인다.
이대로는 집에 언제 갈지 몰라 다시 찾아보니 다른 버스도 가는게 있었다. 가보니 줄은 훨씬 길지만 2층 버스가 꽤 자주오고 있어서 이 버스를 타기로 했다. 줄을 서고 20~30분 정도 기다려 버스를 타게되었다. 타면서 이전 버스 줄을 보니 그 중국계 미국인 일행은 버스를 탄건지 보이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전철도 타고 걷기도 꽤 걸었어야 했는데 호텔 근처 아는 거리에 왔을 때쯤 다행히도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호텔에 돌아오니 시간은 10시 반쯤이었다.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다.
셋째날은 전날의 피로가 덜 풀려 느지 막히 일정을 시작하였다.
먼저 미도 카페에 방문해서 밀크티와 스파게티를 먹고 하버 시티로 이동했다. 밀크티는 설탕을 넣지 않아 달지 않은데 설탕이 자리마다 있어서 당도를 직접 조절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버 시티 내부 명품샵들을 한번 둘러보며 구경한 뒤에 빅토리아 하버로 이동했다. 바다와 마천루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가 볼만하다.
아직 한낮이라 푹푹 찌는데 이 날씨에도 조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행 중에 몇번 보았는데 이런 날씨에 익숙한 홍콩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그 다음에는 스카이 100 전망대로 이동했다. 건물 내에서 전망대로 가는 입구를 못찾아서 한참 해매다 들어갔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6시 조금 전이었는데 이제 막 일몰이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 시간 정도 머물면서 해가 지고 건물들에 불이 켜지고 야경으로 바뀌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넷째날은 마카오를 다녀왔다. 홍콩 페리 터미널로 가서 페리를 타고 약 한시간 정도 이동을 해서 마카오로 이동했다. 이동 하는 중에 딱히 볼만한 것은 없었다.
마카오는 홍콩과는 다른 행정구역이기 때문에 출입국절차를 다시 거쳐야했다. 마카오 분위기는 홍콩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홍콩보다 조금 더 유럽 느낌이 났다.
육포와 에그타르트를 파는 가게들이 거리에 많았다. 육포는 한국에서 보던 육포와는 생김새가 조금 다른데 한국의 떡갈비와 유사하게 생겼다. 두께가 한국의 육포보다 훨씬 두껍고 딱딱함이 덜했다. 시식을 해봤는데 고기 냄새가 많이 나서 구매하지는 않았다. 에그타르트는 맛있었다. 그런데 에그타르트를 먹어본게 처음이라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렇게 거리를 구경하다가 오후 2시가 넘어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려고 식당을 찾았는데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거의 3시가 다되어서 한 식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브레이크 타임이라고 하여 다시 나와 근처에 있는 다른 작은 식당에 들어갔는데 홀에 손님도 직원도 아무도 없었다.
여기도 브레이크 타임인가 싶어 나가려는데 한 남자가 주방에서 가림막을 걷으며 슬그머니 나온다. 반기는 기색은 아니고 살짝 고민하는 표정이 잠깐 스친다. 브레이크 타임이냐고 묻자, 잠시 생각하더니 아니라고 한다. 다행이다.
간장 계란밥에 구운 돼지 고기를 곁들인 일품 요리를 먹고 성 바울 성당 유적 둘러보았다. 유명한 곳이라 사람도 많고 사진찍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성 바울 유적 옆 가게에서 버블 밀크티 한잔을 사먹은 뒤 너무 늦지 않게 홍콩으로 출발했다. 마카오 페리 터미널로 가야했는데 실수로 버스를 반대 방향으로 타서 한참 뒤에 엉뚱한 곳에서 내렸다. 버스를 다시 타려면 마카오 동전이 필요한데 동전을 다 써서 그냥 택시를 탔다. 지폐를 내고 버스를 타도 되지만 거스름돈은 주지 않는다.
홍콩에서 3가지 버스를 타봤다. 2층 버스, 1층 버스, 1층 미니 버스. 이중에서 1층 미니 버스에는 하차벨이 없어서 기사에게 내린다고 말을 하면 기사가 왼손을 들어 알았다는 표시를 한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기 때문에 왼손을 든다.)
처음 이 버스를 탔을 때 어떻게 내려야하는지 몰라서 한참 뒤에야 다른 일행들과 함께 내렸었다.
어쨌든 페리를 타고 홍콩으로 다시 돌아와 딤섬과 계란빵, 쿠키로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오니 한국은 몇 일 전보다 공기가 많이 차가워졌음을 느끼리 수 있었다.
홍콩의 후덥지근한 날씨도, 한국의 여름도 이전보다는 싫어하지 않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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